예전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자 했으나, 책이 워낙 어려워 포기했었다. 해설 도서를 통해서라도 접하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내가 기존에 가진 가치관과 매우 흡사해서 신기하기도 했다.
삶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허무주의 시대 속에서, 세상 살아가기는 더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삶도 사랑할 수 있을까?
니체는 인간을 극복해야할 존재로 보았다. 나아가야 할 이상향으로 ‘초인’이라는 개념을, 이와 대비되는 존재로 ‘마지막 인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초인이 되기 위해서, 니체는 자신을 경멸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자존감을 깎아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경멸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경멸은 개선의지를 의미하는 듯한데, 자신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이를 경멸함으로써 발전하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파악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지막 인간’은 사랑, 의미, 희망 등이 없이 그저 행복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사람이다. 니체는 이들을 경멸할 줄 모르는 경멸스러운 존재라 칭한다. 발전이 없이 현실에 안주하여, 지금 또는 미래의 행복에 만족하는 상황을 경계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니체의 영원회귀 이론과 직결된다. 저자는 예시로 YOLO, 소확행 등을 언급하였다. 나는 그것 자체가 나쁘기보다는 그것의 극단적인 행위를 경계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 하나의 과정으로 사용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마지막 인간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마지막 인간의 면모가 존재하기에, 이를 경멸함으로써 초인이 될 수 있는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 모순을 수용하고 견뎌내면서 극복해야만 한다. 어둠이 있기에 별의 존재를 알 수 있듯이, 마지막 인간과 초인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인 듯 하다.
자신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사회에서 우리는 친구,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선택을 할 때에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때에도 말이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남이 생각하는 방식과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가져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사회로부터 해방되어 고독과 함께 온전히 ‘개인’이 되어야 한다. 이 고독에는 물리적인 고독, 사회적인 고독, 정신적인 고독 등이 포함된다.
나는 고독을 가장 실천하기 좋은 행위는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에서는 낯선 환경에서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경험을 하게 되는데, 어쩌면 기존 사회와 단절된 그 낯선 경험 속에서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마다 목적이 다르고 정답은 없지만, 한국인들을 보면 목적 없이 남들도 가니까 해외여행을 떠난다. 고독을 실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을 고독하지 않게 결정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고독을 위해 사회와 완전히 분리, 단절되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섞이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고독을 즐기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차라투스트라가 산을 오르고 내리는 왕복의 길로 표현하였다. 사람들과 어울려봐야 고독을 알 수 있고, 그 고독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산에 내려와야 그 산이 얼마나 높고,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독은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초인은 각자의 길을 걷되, 그 길을 위해 서로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이 친구는 남을 무작정 배려하고 희생하는 이타주의적인 사람도 아니고, 서로에게 노예, 폭군이어서도 안된다고 한다. 즉 상대방을 소유하거나 조종하려고 하는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나는 고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소유하고, 조종하고자 하는 이유는 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하며, 고독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고독을 위해선 상대방과 적절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장단점이든, 친밀한 관계이든. 그래야 비로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상대방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친구’가 부부 관계에 해당한다고 본다. 부부야말로 인생을 끝까지 함께할 친구니까. 우리는 상대방을 너무 사랑한다는 이유로 소유하고, 간섭하려 한다. 또한 상대방의 의견에 의존하고 기대고자 한다. 이러한 맹목적 관계를 경계하고, 사랑의 독점적 성질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상대방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말은 쉽지만, 감정이란 것은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음에 새겨두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이론을 주장했다. 솔직히 어려워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순환되고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럼 삶이란 왜 사는 것이며, 선악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차피 모든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영원회귀의 세상 속에 있더라도, 나와 내 삶의 가치를 찾음으로써 이를 받아들이고 허무주의를 극복해야한다는 것 같다. 미래와 과거가 만나는 지점인 ‘순간’에 따라서, 미래와 과거가 달라진다. 따라서 순간을 긍정해야만이 과거와 현재, 미래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 순간을 긍정함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면 가혹한 고통은 그저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삶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인생을 돌아볼 때에 다시 똑같이 살고 싶을 정도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Amor Fati. 내 운명을, 내 삶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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